이제 울지 않을 자신 있어.
글/ 오정순
*인물
1. 하민-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야.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울보라고 하면서 답답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더 답답해. 근데, 우리 누나와 할머니는 달라.
하긴 내가 말도 잘 안하고, 맨날 울기만 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가 무슨 말만하면 다 틀리다고 하니까 나도 말하기 싫을 뿐이야.
2. 하영- 우리 누나. 나하고 같은 학교 6학년인데 키도 크고 무지 이쁘다.
공부도 아주 잘하고 사람들한테 칭찬을 많이 들어. 그치만 난 하나도 샘이 안나.
왜냐구? 난 누나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으니까... 그리고 누나가 모르는 비밀을 나는 알고 있는데 그건 누나한테 끝까지 말 안 해 줄 거야.
3. 할머니- 친구 같은 할머니. 아니 친구보다 더 좋은 할머니. 방이 두 칸뿐이어서 세 명이
같이 방을 쓰니까 우리가 공부에 방해 될까봐 늦게까지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는 척 하는 할머니를 나는 알고 있지. 그래도 할머니가 보내주시는 편지가 좋아서 거실에 계신 할머니를 들어오시라고 하지는 않아. 이건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가 아니야.
4. 캡슐란-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이야. 감기약처럼 생긴 캡슐모양이라서...컴퓨터에 처음 보 는 사진이 있어서 마우스로 클릭 하는 순간 끌려 들어가서 만난 사이. 나에게 중요한 물건을 준다.
5. 엄마와 아빠- 비록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어.
처음에 엄마 아빠 마음을 몰랐던 게 너무너무 미안해.
6. 그 외- 선생님, 동네 사람들, 친구들...
* * * * * * * * *
♣.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
나는 신발주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어. 머리는 땅을 향해 푹 숙이고 입술을 꼬옥 물었지. 왜냐구? 저 앞에 세경 엄마가 오고 계셨거든. 저 아줌마들은 나만 보면 맨날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애라고 그러시는 거야. 지금도 분명히 그러실 거야. 그래서 일부러 못 본 척 하려구 그러는 거지. 오늘은 울지 않겠다고 아침에 결심했었거든.
“ 하민아! 학교 가니? 지금 영내다리 밑에서 너의 엄마 만났는데 너 한번 꼭 데려 오라고 하더라. 이렇게 울면서....”
안 쳐다보려다가 옆으로 슬쩍 쳐다보니 손가락 끝에 침을 찍어서 눈에 바르며 우는 시늉을 하시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발밑에 있는 돌멩이를 걷어찼어. 돌멩이는 조금만 날아갔는데도 발가락이 얼마나 아픈지 진짜 눈물이 나올 뻔 했다니까.
푹 숙였던 머리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봤어. 그랬더니 지나가던 바람이 내 눈을 쓰윽 문지르지 뭐야. 신기하게도 눈물이 속으로 숨어 버렸어.
♣.학교에서
수업시작 조금 전이었어.
“야! 울보.”
“문하민!”
친구들이 어제처럼 또 시작인거야.
‘아무리 그래봐라. 오늘은 내가 울보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줄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울보! 오늘은 안 우니?”
“왜 안 울겠어. 봐라. 운다. 운다. 울어. 운다......”
나는 놀리는 아이들을 쏘아봤어.
“너희들 왜 매일 하민이를 놀리니? 그렇게 놀리면 너희들은 좋겠니? 눈물이 안 나겠어?”
민영이가 내 앞을 가로 막으며 친구들에게 소리쳤어. 근데 이게 뭐야. 애들이 그렇게 놀려두 화만 났었는데, 그만 주책없는 눈물이 갑자기 튀어 나오는 거야. 그건 아마 돌멩이를 찼을때 나오려고 했다가 들어갔던 눈물일거야. 나는 진짜 울보가 아니야. 요새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렇단 말야. 사람들은 맨날 만나기만 하면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애라고 그러는데 나두 처음에는 놀리느라고 그러는 줄 알았어. 근데 요새는 진짜라는 생각이 들어서 맘이 심란하단 말이야. 오늘 아침에만 해도 그래.
아침밥을 먹는데 엄마가 내 앞에 있는 계란말이를 누나 앞으로 밀어 놓는 거야. 몸이 약하니까 많이 먹어야 한다면서.... 슬그머니 화가 나는데 뭐라는지 알아? 사내놈이 왠 눈물이 그리 많냐고 질질 짜고 다니지 좀 말래. 아빠라도 잠자코 계셨으면 참을 수 있겠는데 또 한마디 하시는 거야.
“하민이는 눈물샘이 옹달샘만 한가 보다” 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는 식구들 하고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슬픈 것도 식구들은 아무도 모를 거야. 오늘은 아침밥도 두 숟갈 먹다가 말았어. 학교 가는 길에는 또 세경엄마 만나서 기분 나쁜 소리 듣고.... 민영이 그 계집애는 왜 또 잘난 척해서 오늘 결심 무너지게 하는 거야?
그런데 또 한 번 속상한 일이 생기고 말았어. 선생님께서 가지고 있던 출석부로 부채질을 하시며 “여름은 왜 더울까?” 하고 물으시는 거야.
“햇볕이 뜨거워서요.”
“지구가 공전을 하니까요.”
나두 지지 않으려고 한마디 했지.
“햇볕이 아주 빨리 날아오니까요.”
아이들이 “와” 하고 웃어댔어.
“햇볕이 축구공이냐? 날아오게.”
한별이가 옆에서 빈정댔어.
“그럼 걸어서 오냐?”
나도 쏘아 붙였지.
선생님께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지도 않고 설명도 해 주시지 않는 거야. 생각해 봐. 태양에서 뜨거운 햇볕이 식기 전에 빨리 날아오니까 뜨거운것 아니겠어?
선생님은 또 물으셨어.
“그럼 이렇게 더울때는 어떻게 하면서 보내면 좋을까?”
“바다에 가요.”
“에어컨 틀어요.”
“시내에서 물고기 잡으며 놀아요.”
모두들 한마디씩 했어. 난 가만히 있었지 뭐. 또 애들이 놀릴 것 같았으니까.
“물소리가 어떻게 들리지?”
“쏴아. 쏴아. 철석. 철석....”
“졸 졸 졸.....”
친구들의 거의 비슷한 소리가 비오는 날처럼 시끄러웠어.
“하민이는 왜 아무 말도 안 해?”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가 뭐라고 말하길 기다리는 눈치였어. 참으려면 끝가지 참아야 하는데, 작년에 식구들과 강원도에 놀러 갔을 때 들었던 계곡물 소리가 갑자기 생각이 난거야.
“코올. 고올. 고골. 골 골 골......”
친구들이 책상을 치면서 웃는거야.
“물이 감기 걸렸나봐.”
“병들었나봐.” 하면서....
그렇게 웃을 거면서 왜 말 하라고 했는지 답답하고 화가 나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쏘아봤어. 그런데 또 눈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눈 속에서 한 바퀴 빙 도는 거야.
♣. 누나는 내 편
“안녕 하세요?”
누나는 세경 엄마와 은영 엄마가 걸어오는 곳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어.
“하영이구나. 약수터에 가니? 동생 달래주려고 가는 구나. 착하기도 하지.”
아줌마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말했지. 그건, 아직은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았을 테니까 내가 이해 해야지 뭐.
“누나 저 아줌마들은 맨날 엄마가 만들다 만 음식 같은 소리만 한다.”
“싱겁고 맛 없다구?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또 놀렸니?”
누나의 묻는 말에 이제 막 눈물 속에서 나오려던 눈알이 또 풍덩 눈물 속으로 빠지는 것이었어.
“바보야! 그건 네가 귀엽고 예뻐서 놀리느라고 그러시는 거야.”
그러면서 누나는 내 코를 살짝 잡아 당겼지. 그렇지만 오늘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어.
내가 보기엔 누나가 훨씬 더 예쁘다는 걸 알았으니까....
누나는 약수터에 올라가다가 중간쯤에서 주저앉았어. 힘들고 다리가 아프댔어. 내가 누나 손을 붙잡고 힘껏 잡아당기며 올라갔지.
“와! 하민이 장사네. 이제 괜찮으니까 좀 쉬었다가 가자.”
“나는 괜찮은데.”
그렇지만 솔직히 괜찮은 건 아니었어. 체육시간에 100m 를 죽어라고 달린 뒤 다리가 어디로 없어진 느낌. 그런 것이었지.
“누나! 진달래꽃이 잎한테 자리 빼앗겼으니까 봄도 자리 뺏긴 거지?”
누나는 보조개를 깊게 잡아당기며 저쪽을 가리키는 것이었어. 근데, 거기엔 하얀 꽃과 초록 잎이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야.
“저건 아카시아야. 여름이 시작될 때 피는 꽃이지. 하민아! 숨을 크게 들이 마셔봐. 냄새가, 냄새가 아주 끝내 줘요.”
누나는 텔레비전 광고를 흉내면서 웃었어. 나는 그 끝내주는 냄새를 욕심내어 먹느라고 가슴과 배를 고무풍선처럼 만들었지.
“누나. 가만히 들어봐. 이 물소리가 어떻게 들려?”
“글쎄? 넌 어떻게 들리는데?”
“어제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냇물 소리가 어떤 소리를 내느냐고 그러셨어.”
“그래서?”
“조르 지르 지로르리... 그런데 애들은 막 웃고 선생님은 틀렸대.”
“그래? 그럼 우리 잘 들어볼래?”
- 조르 지르 지로르리 지로르리......-
아무리 들어도 친구들이 작은 소리로 가르쳐 주던 졸 졸 졸은 아닌 거야.
“하민아! 나도 너처럼 들린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듣던 누나가 내 편이 되어 주니까 어제 일은 더 이상 슬프지 않았어.
눈물 속에 빠졌던 눈동자도 어느새 올라와 누나의 보조개를 태우고 있었지.
“누나! 그럼 여름은 한참 있다가 떠나겠지?”
“그으럼. 저 아카시아가 아직 냄새도 다 나누어주지 않았는걸. 하민아! 이제 그만 가자. 뱃속에서두 시냇물 소리가 난다.”
그러면서 누나는 물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나는 누나가 들고 있는 물통을 빼앗았어. 누나가 달라고 하는데도 집까지 내가 들고 왔지. 하나두 안 무겁다고 누나한테는 말했지만 사실은 많이 무거웠어. 그렇지만 꾹 참고 왔지. 난 남자거든.
♣.할머니도 내 편.
우리집은 빌라야. 입구에서 계단을 다섯 개쯤 내려가면 현관문이 나와. 며칠 전에 민영이네랑 지민이네 집으로 숙제하러 갔었는데, 그 애들은 방도 혼자 쓰고 집이 너무 커서 운동장 같았어. 나는 잘 몰랐었는데 그래서 우리 집이 작다는 걸 알았어. 계단을 세면서 내려갔지.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려는데 현관문이 열렸어.
“어이구! 우리 강아지들 잘 다녀왔냐?”
할머니는 오이를 썰고 계셨는지 오이 냄새가 났어. 냉면을 만들고 계셨대.
“할머니! 냉면 가게 하면 돈 많이 벌겠다.”
그러면서 나는 한 그릇을 다 먹고 또 달라고 했어. 할머니도 신이 나시는지 자꾸자꾸 더 주시는 거야. 그런데 그만 큰 일이 나고 말았어.
그날 밤 꿈을 꾸었지. 동네 아줌마들이랑 친구들이 빙 둘러 서있고 나는 그 가운데에 술래가 되어 앉아 있었어. 사람들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지. 어느 다리 밑에 이상하게 생긴 아줌마가 앉아 있는데 사람들은 그 사람이 우리 엄마라면서 떠다미는 거야. 나는 안 가려고 다리에 힘을 주며 주저앉았고 사람들은 힘을 주어 밀고....
그러다가 잠을 깼는데 이게 뭐야? 깔고 잤던 요가 축축한 거야. 옆에서 주무시던 할머니도 일어나셨어. 그리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이 손가락을 세워서 입에 대시며 그냥 누워있으라고 하셨어. 그리고 누나를 부르시는 거야.
“하영아! 할미가 목이 마르다. 물 좀 한 사발 떠 와라!”
그러셨어. 누나가 물을 떠 오자 할머니는 한 모금 마시는 척 하시다가 그만 요 위에 물 컵을 떨어뜨리시는 것이었어.
“어이쿠 이걸 어째. 하민이 바지까지 다 젖었네.”
그러시면서 젖은 요를 둘둘 말아서 가지고 나가시는 거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동안 서 있었어. 그러다가 할머니께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지. 누나와 나는 거의 매일 할머니하고 메일을 주고받거든.
♣. 캡슐란
이미 어제밤에 써 보낸 할머니의 편지가 와 있었어. 편지를 읽으려는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상한 모양이 뜨는거야. 마치 볼링핀 같은....
“어! 이게 뭐지?”
그러면서 마우스를 갖다 대는 순간 어제 밤에 사람들이 밀던 힘보다 더 큰 힘이 나를 잡아당기는 거야. 고무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가 갑자기 놓을때처럼 나는 깊은 웅덩이로 푹 빠지는 것 같았어.
“여기가 어디야?”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소리가 느껴졌어. 그래 맞아. 느껴진 소리야. 분명히 귀로 들려야 하는데 느껴지는 소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소리는 이렇게 말했어.
“여기는 인간세상과 유리창 하나 차이밖에는 안 되지만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야.”
하는 알 수 없는 말.
밖으로 나가려고 바라보니 분명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할머니가 앉아계신거야.
“어! 이게 뭐지? 우리 하민이 하고 똑같이 생겼네.”
하시면서 할머니는 마우스로 내 이마를 톡 쳤어. 나는 한 바퀴 빙그르 돌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어. 다시 나가려고 올라가면 또 치고.
“할머니! 나야. 하민이. 치지 마. 나가야 한단 말야.”
“이게 어디서 우리 손자 흉내를 내?”
할머니는 또다시 내 이마를 톡 치셨어. 나는 기운이 다 빠져서 벌렁 누워 버렸어. 허공에 글자들이 줄어 지어 생겨나고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블록 모양의 글자들은 할머니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었어. 만들어 지는 글자들을 읽고 있는데 또 느껴지는 소리가 있었어.
“반가워 친구!”
나는 느낌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지. 거기엔 지난번 감기 걸렸을 때 먹었던 약 같기도 하고 볼링 핀 같기도 한 것이 세워져 있었어. 눈도 코도 입도 아무것도 없는데 가운데에 금색 띠가 그려져 있었고 느껴지는 소리는 그 띠 사이에서 나오는 것 같았어.
“네가 보기에는 내가 이상해 보이지? 그럴 거야. 이런 모양은 처음일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일 보니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 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들어오는 사람은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지. 컴퓨터 밖에서는 모습만 보이지만 이 안에서는 그 마음속까지 보이니까. 넌 왜 의심하니? 뭐? 내가 이상한 소리 한다구?”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감기약 모양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 들은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 느낌의 소리는 위쪽을 보라고 했어.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탤런트들 그리고 국회의원 아저씨들이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가슴 속에서 사진 한 장씩이 보이는 거야. 돈 다발도 보이고 징그러운 벌레도 보이고..... 얼굴 생김새와 표정하고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진들이었어.
갑자기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은 것처럼 깜깜해 졌어. 한밤중에 정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무서웠어. 식구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서 눈물이 또 나오는 거야.
“무서워하지 마. 울지 마.”
하는 소리가 또 느껴졌어. 이 느낌의 소리는 감기약 모양의 캡슐에서 들리니까 지금부터는 부르기 편하게 ‘캡슐란’ 일고 부를게. 아무튼 이 캡슐란은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울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는 듯 했어.
“컴퓨터를 끄면 이런 세상이 되는 거야. 걱정하지 마. 곧 밝게 해 줄게.”
그러면서 반짝이는 상자 하나를 열었어. 그 속에는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들어 있었어. 몇 개를 꺼내자 다시 밝아졌지.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그 빛은 얼음이 녹는 것처럼 없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상자에서 몇 개를 더 꺼내더라구. 내가 무서워하니까 그 캡슐란 친구는 계속 빛을 꺼내는 것이었어.
“참을 수 있으니까 그만 꺼내. 너무 미안하잖아.”
“아니야. 이건 너희 집 식구들이 만든 빛이니까 미안해 할 것 없어. 그동안에도 많이 썼는데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는걸.”
“우리 집 식구들이 만든 빛이라구? 언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빛이야. 지금 너와 할머니가 주고받는 편지내용. 그리고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아빠가 양로원과 고아원에 보내는 편지내용들이 오고 갈 때마다 작은 빛의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모아서 저장해 놓은 거야.”
나는 캡슐란친구가 하는 말의 뜻을 알지 못했어.
“언젠가는 다 알게 될거야.”
캡슐란은 또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말했어.
“지금 알고 싶어. 지금 말해주면 안돼? 궁금하단 말야.”
“그럼 나한테도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어?”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네 눈물이 필요해.”
“내 눈물? 이 흔해빠진 눈물을 무엇에 쓰게?”
“나 한테는 아주 귀하고 필요한 거야. 나눠 줄 수 있어?”
“그야 얼마든지. 다 가져가도 좋아. 난 이 눈물 땜에 날마다 놀림을 당하거든.”
“아니야. 내가 욕심을 부리자면 모두 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러니까 반씩만 나눠 갖자. 다른 사람의 눈물은 가짜가 많지만 네 눈물은 진짜거든.”
나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캡슐란은 자신의 몸을 빙빙 돌리더니 중간에 두른 금테 무늬 사이에서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을 날아오게 했어. 그리고 내 눈속에 그 끝을 담그는 거야. 그러자 온 몸이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무언가 빠져 나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어. 그건 아주 잠간 동안 일어났어. 마치 예방주사를 맞을 때처럼.....
그리고나서 캡슐란은 자신의 모양과 똑같은 작은 캡슐을 띠 가운데서 나오게 했어.
“자 이걸 가져. 이건 누군가의 마음을 알게 해 주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주 귀중한 거야. 이걸 손에 쥐어봐. 그리고 엄지손가락이 이 중간에 있는 띠 부분에 닿게 하고 마음을 알고 싶은 사람을 바라보면 돼. 그러면 그 마음이 지금처럼 들리게 된단다.”
그리고 나서 캡슐란은 나를 터널처럼 생긴곳으로 데리고 갔어.
“자. 여기서 부터는 혼자 가야 해. 이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기다리다가 빛이 나면서 환해지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뛰어. 만약에 머뭇거리면 누군가 또 네 머리를 치게 되고 그러면 다시 지난번처럼 떨어지게 돼. 나는 인간세상으로 나갈 수도 없고 잡아당기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어. 길이 좀 컴컴할 거야. 조심해서 걸어.”
나는 캡슐란이 가르쳐준 터널을 조심조심 걸었어. 캡슐란은 뒤에서 계속 빛의 상자를 열어 빛의 알갱이들을 꺼내는 것이었어. 내가 터널 끝에 다 올 때까지.
이제 혼자 남았고 어두웠지만 꾹 참고 기다렸어. 컴퓨터를 켜는 순간 환해진다고 했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기 전에 빨리 뛰어야 한다고 했어. 머뭇거리다가는 또 마우스로 얻어맞고 떨어진다고 했으니까.
지금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 다섯 시간쯤? 아니면 이미 며칠이 지나갔을까?
컴컴한 터널 끝에 혼자 있으니까 이제야 우리 집이 궁금해지는 거야. 내가 없어진걸 알면 누나와 할머니가 얼마나 걱정 할까? 아마 아파서 누워 계실지도 몰라.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하지? 엄마 아빠는 내가 어디 가서 또 엉뚱한 짓 하고 있다고 생각 할 거야.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제는 무섭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어. 너무 지루해서 잠간 눈을 감고 있는데 밝은 빛이 느껴졌어. 눈을 뜨고 바라보니 앞에 누나가 앉아 있는 거야.
‘아차! 늦었다. 누나가 보기 전에 나가야지.’
나는 눈을 꼭 감고 앞으로 힘껏 뛰었어.
♣. 아직 그날 아침이야?
“하민아! 너 뭐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 눈을 떠 보니 글쎄 내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엄마는 식탁에 반찬을 놓다 말고 바라보시고, 아빠는 면도 하시던 채로, 할머니는 빨래를 하시던 중인지 화장실 문 앞에서, 누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뒤돌아보는 상태로. 모두들 내 모습을 보고 웃는 거야.
“하민이는 바람인가봐. 아까는 다 찾아도 없더니 어디서 금방 나타난 거야?”
누나가 컴퓨터를 끄면서 물었어.
“으음. 캡슐란 만나고 왔어.”
“엄마! 하민이가 아직 잠이 덜 깼나 봐요.”
“우리 강아지 어서 이리와. 할미가 씻겨 줄 테니까. 할미가 물 엎질러서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런 거지 뭐.”
“어! 그럼 아직 그날이야?”
나는 아직 시간이 얼마 안 지난 것을 알고 나니까 너무 기뻤어.
“그날 아침이라니? 어서 찬물로 세수하고 나와라. 그러면 정신이 좀 들 테니까.”
아빠가 면도하던 손을 멈추시고 말씀하셨어. 내가 꿈을 꾼 것일까? 그렇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사진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야. 나는 캡슐란의 모습을 생각하며 쥐고 있던 손을 펴 보았지. 그런데 캡슐란이 준 그 감기약 같은 것이 그대로 있는 거야.
학교에 가는 길이었어. 누나가 내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어.
“하민아! 저 앞에 지훈 엄마 오신다. 또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해도 울면 안 돼. 그건 네가 예뻐서 놀리느라고 그러시는 거니까.”
나는 누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어. 엄지손가락을 띠 부분에 대고 아줌마를 바라보았지.
“저 녀석이 오늘은 왠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하는 소리가 느껴졌어.
“아줌마 안녕하세요?” 누나가 웃으며 인사를 했어.
“응. 학교 가는 구나. 그런데 하민이는 다리 밑에서 기다리는 엄마 만나고 왔니?”
그러시는 거야. 나는 좀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웃었어.
“어? 저 녀석이 오늘은 왠일이야. 이상하네.”
하는 소리가 느껴졌어.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이 모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때마다 그 캡슐에 엄지손가락을 대었지.
“문하민! 손 시렵니? 왜 하루 종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지? 겨울도 아닌데...”
선생님께서 이상하다는 듯이 물으셨어.
♣.피자에 피를 섞어서 만드나?
오늘은 하루 종일 친구들 마음의 소리를 듣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어.
“우리 강아지가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어 주시며 말씀 하셨어.
“와! 피자 냄새. 할머니! 피자 만들어?”
“우리 강아지 코는...”
하시다가 딱 멈추셨어. 내가 화난 듯이 바라 봤거든.
“할머니. 난 강아지가 아니야. 하민이야. 문하민!”
“이쁘니까 그런 거야.”
할머니는 그렇게 둘러 대셨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어쩌면 저리도 이쁘고 잘 생겼을까?”
나는 깜짝 놀랐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할머니를 바라봤던 거야.
어디에 피가 안 섞였다는 거지? 그럼 피자 만들 때 피를 넣고 만드는 건가? 할머니는 과일을 살 때에도 이놈이 잘 생겼다. 저 놈은 못 생겼다 하시며 이쁘고 잘 생긴 놈으로 달라고 하시기는 하는데... 피자에는 무슨 피를 넣는 거지? 아이 복잡해. 컴퓨터나 켜 보자. 캡슐란이 혹시 나를 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
“치이! 할머니. 오늘은 왜 편지가 없어?”
“이따가 밤에 쓸 거야. 오늘은 하민이가 오줌 싼 거 빨래하느라고 힘들었어.” 하시며 오줌이라는 말을 큰 소리로 하시는 거야.
“이 녀석아. 너희들 오늘부터 시험공부 해야잖어. 할미가 같이 있으면 공부가 않되는 거 이 할미도 알어. 그러니까 그때는 편지 쓰는 거 핑계 삼아서 거실에 있는 거여.”
하는 할머니 마음의 소리가 느껴졌어.
아! 그랬구나. 그래서 항상 할머니는 우리가 책을 펴기만 하면 거실로 나가셨구나.
“할머니! 정말 미안해. 나는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는 편지를 쓰면서 이 편지에서는 빛의 알갱이가 몇 개나 떨어질까를 생각했어. 나 때문에 빛을 다 써버린 캡슐란을 위해서라도 캡슐란이 말하던 그 따뜻한 사랑의 편지를 많이 써야 겠다고 생각했어.
♣. 누나의 생일
“딩동!”
“누나다! 오늘은 늦게 온다고 했었는데....”
그렇지만 난 기분이 좋아서 얼른 현관문을 열었어.
“어?”
나는 깜짝 놀라서 멍하니 서 버렸어.
“이 녀석아. 저리 비키던지 이걸 좀 받던지 해라.”
엄마와 아빠는 봉지를 한 아름씩 안고 계신거야. 매일같이 밤에나 들어오셨는데 오늘은 엄마 아빠가 이렇게 일찍 같이 들어오시니 놀랄 수밖에.
“내일이 하영이 생일 이예요. 제가 워낙 음식 솜씨가 없어서 매번 어머님이 하셨잖아요. 올해는 제가 좀 만들어 보려구요. 못한다고 흉보지 마시고 잘 좀 가르쳐 주세요.”
엄마는 가져온 봉지들을 식탁위에 놓으며 말씀하셨어. 글쎄 항상 저렇다니까. 내 생일도 불과 일주일 전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보냈는지 알아? 아침에는 미역국에 반찬 몇 가지 안 되게 해서 먹었어. 물론 저녁에는 할머니가 자장면 시켜 주셨지만. 엄마 아빠는 밤늦게 들어오셨구. 내가 갖고 싶어 했던 로울러스케이트도 물론 안 사주셨지. 그런데 이게 뭐야. 누나 생일은 내일인데 오늘부터 벌써 잔치집이야. 나는 슬그머니 심통이 났어. 방문을 꽈당 닫고 방바닥에 누워 버렸지. 캡슐란한테 눈물을 나누워 주었는데도 눈물은 계속 나왔어. 누나한테 생일축하 편지 서 놓은 것도 <취소하기>를 눌러버렸어.
* * * * * *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식구들이 모두 바쁘게 움직였어. 나는 벌써 잠을 깼는데도 자는 척 하고 눈을 감고 있었지.
“하민아! 그만 일어나. 아침먹자.”
나는 억지로 졸린 눈을 비비는 척 하면서 식구들이 모인 식탁 앞으로 갔어. 식탁에 가득 차려진 맛난 반찬들. 그리고 아주 작은것이기는 하지만 생일 케익에도 불이 붙여져 있었어. 모두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누나가 촛불을 ‘후우’ 하고 껐어. 다같이 손뼉을 치며 축하해 주었지.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심통이 남아 있어서 가만히 있었어. 식구들이 내 눈치를 보며 분위기가 이상해 졌어. 가만히 계시던 아빠가
“자! 어디 실력 발휘한 음식 맛들 보십시다.”
하시면서 국을 한 숟갈 뜨셨어.
“하민이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거 알지? 지금은 아침이니까 이따가 학교 갔다 와서 얘기 좀 하자.”
엄마가 작은 소리로 나에게 말씀 하셨어. 나는 내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왜 못 해 주시는지 따져 물으려고 엄마를 바라보았지.
“내 아들 하민아. 미안해. 엄마는 항상 너한테 미안하단다. 그렇지만 누나는 정말 불쌍하게 태어났어. 누나는 네 친누나가 아니야. 그러니까 조금만 이해해 줘.”
하는 엄마의 마음의 소리가 느껴지는 것이었어. 나는 너무나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어. 순간 맛나게 음식을 드시던 아빠와 눈이 마주쳤지.
“하민아. 변변한 네 방 하나 못 만들어 주고 네가 원하는 거 제대로 못 들어 줘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엄마 아빠를 용서해라,”
나는 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어. 지난번 피자 먹을때 할머니 마음의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의미도 알게 되었지. 엄마와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가서 가끔씩 봉사 활동을 하셨대. 거기서 누나와 할머니를 만났고... 집은 비록 넉넉하지 않았지만 좋아하고 따르던 할머니와 누나를 집으로 오게 하셨대. 누나는 너무 어렸을 때여서 기억을 못하지만 할머니는 마음의 소리로 나에게 다 말씀 해 주셨지.
♣. 정말 미안해.
몇 년 전에 잘 되던 아빠의 공장도 부도가 나서 공장 문을 닫았고 지금은 다른 회사에서 엄마 아빠가 일을 하고 계시지만 아직도 봉사 활동 하시는 일을 계속하신다는 거야. 많지는 않지만 월급을 타면 돈을 보내기도 하면서....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바보였는지. 그런 엄마 아빠를 왜 미워했는지.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했어. 두 눈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금방이라고 넘칠 듯이 가득 고였어.
“넌 또 우니? 사내 녀석이 하루라도 눈물 마를 날이 없으니 어쩌면 좋아.”
엄마가 혀를 끌끌 차며 말씀 하셨어.
“그런 엄마는. 아빠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해?”
나는 엉뚱하게도 마음에도 없는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나는 지금 나한테 화가 나서 그러는데 엄마 아빠는 그걸 모르시는 거야.
“ 하민아! 가방 갖고 가야지.”
누나가 내 책가방을 들고 헐떡거리며 뛰어왔어.
“하민아. 서운했니? 지난번 네 생일 아침에 엄마가 그러시더라. 우리 하민이는 남자니까 생일 선물 안 사 준다고 서운해 하지 않을 거라구. 그런데 난 여자라서 삐질 거 같으니까 미리 준비 하신 것 같아.”
누나는 내 비위를 맞추려고 바싹 다가서며 말했어.
“누나! 누나는 진짜 우리 누나지? 하민이 누나 맞지?”
“야! 넌 아직도 그 아줌마들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믿고 있는 거니? 어이구 이 맹꽁아.”
누나는 내 머리에 살짝 알밤을 주었어.
오늘은 공부 시간에도 계속 딴 생각만 했어. 무얼 배웠는지.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도 하나도 생각이 안 나.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교문을 나서는데 아빠의 오토바이가 보였어.
“아빠! 왠일이야? 회사는?”
“응. 우리 아들하고 갈 데가 있어서 잠간 나왔어.”
그러시면서 나를 번쩍 안아 오토바이에 태우고 시동을 걸으셨어. 아빠는 우리집이 아닌 시내를 향해 달리셨어. 그리고 아주 커다란 롤러스케이트가 많은 가게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셨어. 엄마두 그 가게 앞에 서 계셨구.
“하민아. 네 맘에 드는 걸루 골라봐.”
“나 이제 이런 거 필요 없어. 없어두 괜찮아.”
“사내놈이 아직도 삐져있냐? 여태 화 안 풀린 거야?”
그게 아닌데... 나는 내 마음을 이해 못하는 엄마 아빠가 답답하기만 했어.
“이게 멋져 보인다. 한번 신어봐. 지난번에 안 사 줬던 건 위험해서였어. 골목마다 차가 무섭게 달리잖니. 그 대신 꼭 학교 운동장에 가서 타야 한다. 알았지?”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어. 아빠는 나를 집 앞에 내려놓고 다시 회사로 가셨어. 현관문을 열어 주시던 할머니는 내 손에 들고 있는 롤러스케이트를 보시고는
“하민이가 골내니까 엄마 아빠가 무서웠나 보네. 나두 한번 골내볼까? 뭐가 나오나.”
할머니가 놀려 대셨어. 나는 또 궁금한 것이 있었어.
“할머니! 내 바지. 하침에 벗어놓은 바지 어딨어?”
“바지? 응. 그거 아침에 네가 국 엎질렀잖아. 조금 전에 빨았는데. 지금 탈수 되고 있을 거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그래서 세탁기 쪽으로 달려갔지. 마침 탈수가 다 끝났는지 멈추고 있는 중이었어. 바지를 꺼내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 잡히는 것이 있어서 꺼내보고 난 그만 울지 않을 수 없었어. 두 동강이 나서 너덜너덜하게 찌그러지고...
“뭐가 들어있었니?” 할머니가 내 손을 들여다보셨어.
“난 또 뭐라구. 약을 주면 그때그때 먹어야지 그건 왜 호주머니에 숨겨. 안 먹구두 나았으면 됐다.”
하시면서 내 손목을 붙잡은 채 쓰레기통에 대고 톡 치셨어.
♣.캡슐란에게
‘캡슐란. 미안해. 네 분신을 잘 간직하지 못했어. 나는 며칠 동안 아주 어른이 된 것 같아. 너를 만나서 많은 사실들을 알았지만 다는 기억하지 않을 거야. 이제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놀리고, 가서 그 엄마 만나라고 놀려두 울지 않을 자신 있어. 정말 고마웠어.....’
나는 주소도 쓰지 않은 편지를 계속 써 내려갔어. 내가 갔었던 그 자리에서 캡슐란은 꼭 읽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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