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리 엄마야~

나의 글/동화

by 오정순 2007. 9. 1. 10:20

본문

 

우리 엄마야

                                          글/오정순


       - 등장인물 -

*.한지민(초등학교 1학년, 남)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

늦둥이로 태어나 나이 많은 엄마 아빠가 싫다. 더구나 아빠는 대머리, 엄마는 오른쪽 팔이 없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학교에 오시는 것이 싫다. 친구들과 길을 가다가 엄마를 만나도 일부러 피한다. 어느 날 엄마의 부러진 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변한다.


*.이은송(초등학교 1학년, 여)

지민이네 반 반장이다. 명랑하고 모든 일을 척척 잘하여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친구들에게는 인기가 많다.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가 고등학교 때 은송이를 낳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소리만 몰래 엿들은 것 밖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은 할머니와 살고 있다.


*지민엄마 (49살)

늦둥이 지민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팔에 장애를 가지고 있고, 아들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눈치 채고 있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아들고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그러나 피하는 아들을 이해한다.


*.그외- 지민아빠, 은송할머니, 선생님, 한별엄마, 친구들.


            *          *           *           *          *


지민이가 다니는 학교는 중간에 시장이 있습니다. 그 시장 노점에서 엄마 아빠는 도너츠와 어묵국물을 팔고 있지요. 지민이는 학교에 갈 때나 올 때는 그 앞을 지나야 하지만 다른 길을 돌아서 집에 갈 때가 많습니다. 혹시 친구들이 쳐다볼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민이를 동네 사람들은 늦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세은 엄마와 열호 엄마는 지민이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말은 놀리느라고 그런다는 것쯤은 지민이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지민이는 마음이 이상합니다. 그냥 그 놀림대로 주워온 아이였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엊그제 학교에서 오다가 한별이 엄마를 만났어요. 노란색 투피스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한별이 엄마는 가게에서 도너츠를 사고 있었지요.

“우리 왕자님! 따뜻한 어묵국물 마시고 가요.”

엄마가 지민이를 큰 소리로 부르셨어요.

“어머! 늦둥이를 두셨나 봐요.”

한별이 엄마는 도너츠 봉투를 받아들며 웃었어요. 지민이는 그 아줌마가 웃는 것이 정말 싫었어요. 지민이는 엄마를 쳐다보았어요. 부스스한 파마 머리에 더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 오른쪽 팔. 그 손에 낀 장갑은 누런 기름이 묻어 있었지요. 아빠의 머리는 천막 밖에 나올 때마다 햇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이 반사되고 있었구요. 지민이는 멋쟁이 엄마의 손을 잡고 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탔으면 좋겠다고 잠간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빠가 쥐어준 천원짜리 돈을 오른쪽 주머니에 접어서 넣고 집으로 갑니다. 왼쪽 주머니에도 같은 모양으로 접은 종이가 들어있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나눠준 학예회 초대장이지요. 지민이는 이 초대장도 엄마 아빠께 보여드리지 않고 그냥 도장만 찍어갈 생각입니다. 전에도 그랬다가 들킨적이 있었지만 그냥 무사히 지나갔거든요.

두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교실 분위기는 전과 다릅니다. 친구들은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기도 하고,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조용히 하라고 큰 소리 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지민이는 단 한번도 뒤를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덧셈 뺄셈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양 볼에 자꾸만 나타나는 보조개가 신기할 뿐입니다. 지민이는 열심히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지만 선생님의 설명보다는 친구들의 작은 소곤거림이 더 잘 들립니다. 뒤를 돌아보던 한별이가 은송이를 툭 치며 고갯짓을 합니다. 은송이는 그 쪽을 바라봅니다. 지민이도 은송이의 눈길을 따라 그 쪽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은송이 할머니 어깨 위로 엄마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어떻게 알고 왔을까?”

지민이는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얼굴도 잘 익은 복숭아처럼 변해갑니다. 이제는 친구들의 소곤거림보다는 선생님과 엄마한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가 더 걱정입니다. 그 날은 ‘열린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수업이지요. 선생님께서는 부모님이 못 오시게 되면 알림장에 도장을 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민이는 그 초대장을 엄마한테 보여드리지도 않고 서랍에서 몰래 도장을 꺼내 찍어왔습니다. 선생님께서 물으시자 “엄마가 아파서 못 오시겠대요.” 라고 대답했었지요. 지민이는 엄마 아빠가 학교에 오시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얘! 지민이 할머니 장갑끼고 있어.”

“그러게 말야. 날도 더운데…… 그런데 왜 한쪽만 낀 거야?”

친구들이 힐끔거리며 소곤대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엄마가 팔 한쪽이 없다는 걸 알면 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민이는 엄마를 못 본 척하고 다시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은 각자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지민이는 챙긴 가방을 다시 풀었다가 챙기며 빠뜨린 것이 있는 것처럼 살피기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복도에서 지민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송이가 할머니 손을 잡더니 선생님께 인사를 합니다. 지민이는 은송이가 나갈 때 같이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엄마를 바라보셨습니다.

“지민이……”

“네. 지민이 엄마 되세요. 시장에서 만났는데 제가 학교에 간다니까 장사하시다 말고 급히 함께 왔지요.”

은송이 할머니는 얼른 선생님의 말씀에 대답하셨고 엄마는 수줍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름 냄새가 폴폴 나는 검은색 비닐봉투를 선생님께 내밀었지요.

“찹쌀 도너츠예요. 금방 튀긴거라 아직 따뜻해요.”

선생님은 누런 기름이 묻은 엄마의 장갑 낀 손을 보시더니 얼른 출석부를 오른손으로 옮깁니다. 엄마가 들고 있는 비닐봉투가 왼손에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기 쉽게 하려고 그러신 것 같습니다.

“몸이 편찮으시다던데……”

“네. 조금요. 장사하느라고 바쁘니까 아마도 지민이가 미안했나 보네요. 나이는 어려도 아주 속이 깊은 아이거든요.”

엄마는 얼른 되받아 말씀하십니다. 지민이는 엄마 옷에서 나는 기름 냄새를 선생님이 맡으실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한참동안이나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중간쯤에서 엄마와 헤어집니다. 시장에서 엄마와 아빠는 도너츠를 튀겨서 팔고 있기 때문이지요. 엄마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아빠 혼자서 많이 바쁘셨나봅니다. 몇 개 되지 않는 머리카락은 머리에 송글송글 솟아나온 땀방울을 숨겨주질 못했으니까요.

집에 돌아온 지민이는 도장이 들어있는 서랍을 잡아당깁니다. 그렇지만 서랍은 잠겨 있습니다.

“금요일까지니까 이틀은 시간이 있어.”

혼자말로 중얼거렸지만 마음은 불안합니다. 다음날 수업이 끝났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반장은 오늘 남아서 선생님 좀 도와줘야겠는데. 함께 반장을 도울 사람 있으면 같이 남도록 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은송이는 친구들을 둘러보다가 지민이를 가리킵니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 선생님은 친구들의 그림을 게시판에 붙이고 예쁘게 꾸며보라고 하십니다. 지민이는 은송이의 그림을 집어 듭니다. 누가 봐도 잘 그렸다고 칭찬할 것 같습니다.

“넌 못하는 게 없구나!”

별로 말이 없는 지민이가 이런 칭찬을 해 주니 은송이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집니다. 은송이는 정말 무엇이든지 잘 합니다. 마음도 착하고 명랑해서 친구들도 모두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지민이는 그런 은송이가 늘 부러웠습니다.

“너두 잘 그렸는데 뭘.”

하면서 은송이가 지민이의 그림을 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너의 엄마 같지 않고 누나 같다. 얘.”

은송이의 말에 지민이는 기분이 나빠집니다.

“네건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 같은데 뭘.”

지민이도 지지 않고 말합니다. 은송이는 소나기 맞은 날의 얼굴로 변합니다.

“그래, 맞아. 할머니야. 난 엄마 얼굴을 모르거든.”

그러면서도 은송이는 금새 얼굴을 활짝 폅니다. 지민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친구들의 그림만 들었다 놓았다하면서 뒤적거립니다.

“난 엄마 얼굴을 몰라. 한 번도 못 봤거든.”

“돌아가셨니?”

“잘 몰라.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엿들은 것 밖에는…… 우리 엄마가 고등학교 때 나를 낳고 멀리 떠났대. 할머니 집 문 앞에 나를 버리고……”

지민이는 은송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넘칠 것을 생각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은송아! 미안해. 정말 몰랐어.”

지민이의 눈에 먼저 눈물이 고이며 목소리는 기어들어갑니다.

“괜찮아. 나한테는 할머니가 있거든. 그렇지만 어떤 때는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은송이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냅니다.

“그럴 때면 난 할머니를 엄마라고 생각해. 다른 친구들 엄마보다 나이가 좀 많은 엄마라고……”

“넌 엄마 아빠한테 친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놀려두 괜찮어?”

“그으럼.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엄마만 있다면…… 그래서 어떤 때는 할머니한테 엄마! 하고 부르며 장난도 쳐. 그러면 할머니는 징그럽다고 하시면서도 다른 엄마들처럼 나를 꼬옥 안아 주시지. 그땐 정말 엄마 품에 안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은송이는 작은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또박또박 말을 합니다. 지민이는 은송이에게 무슨 말인가를 해줘야 할 텐데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서 엄마가 부르십니다. 그러나 지민이는 계속 앞만 보고 걷습니다. 다른 날은 모르는 척한 것이지만 오늘은 정말 못 들은 것이지요.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은송이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며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어오게 막은 것입니다. 지민이는 은송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말을 생각하다가 잠이 듭니다.

“지민이가 많이 피곤했나보네.”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야 잠을 깹니다. 불을 켜지 않은 지민이 방은 이미 아빠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아차! 도장……”

엄마 아빠가 돌아오시기 전에 도장을 꺼냈어야 하는데, 은송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생각하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만 것입니다. 지민이는 학예회 초대장을 꺼내 놓고 망설입니다.

“지민아! 밥 먹고 자야지.”

아빠의 목소리에 지민이는 얼른 초대장을 책갈피에 끼워 넣고 일어섭니다.

“너 어디 아프니? 아까 시장에서 부르는데도 못 듣더니 낮잠까지 자고……”

하시며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민이의 이마에 손을 얹어봅니다.

“저…… 아니. 아니야. 괜찮아.”

지민이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둡니다. 숟가락을 가만히 놓고 눈치만 살피다가 그냥 방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습니다.

“내일인데 어떡하지? 아프다고 말하고 그냥 학교에 가지 말까? 그렇지만 병원에 가면 꾀병인 거 금방 다 알 텐데……”

지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두 손을 모읍니다.

“하나님! 제 소원 들어주세요. 그리고 부처님도 같이 들어 주세요. 오늘 밤 자고나면 내일은 열이 나면서 아프게 해주세요. 오전까지만 아프면 되요. 꼭 부탁해요.”

지민이는 왜 아프게 해달라고 하는지 그 이유는 말을 안 합니다. 그 이유를 말하면 아무래도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도 부처님도 지민이의 기도를 들으셨나봅니다. 벽에 걸어 놓은 시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쯤 지민이는 오줌이 마렵지도 않은데 잠을 깹니다. 배가 너무 아파서 다리가 오그라들며 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지민이는 너무 아파서 하나님이나 부처님 한 분한테만 부탁할 걸 잘못했다고 후회합니다. 아파서 이제는 열이 나는 것도 싫고 오전까지만 아픈 것도 싫습니다. 지민이의 신음소리에 엄마와 아빠는 놀라서 달려옵니다.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엄마는 지민이의 손을 잡고 누구에겐가 계속 기도를 합니다. 지민이도 이번에는 엄마 기도를 들어 주시고 어젯밤에 기도한 것 취소한다고 속으로 말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진찰을 해 보시더니 ‘급성 맹장염’ 이라고 하시며 수술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지민이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아마 나는 죽을지도 몰라. 내가 너무 나쁜 생각을 하고 거짓말을 하니까 이런 병이 생긴 거야.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지민이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계속 슬픈 생각만 납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아주 깊은 잠을 잡니다.

지민이는 처음 보는 놀이공원에 왔습니다. 엄마와 손을 잡고 뛰어가고 아빠는 아이스크림이 떨어질까 봐 뒤에서 조심스럽게 잡고 뛰어오십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지민이의 왼손을 잡은 엄마 손이 따뜻합니다. 장갑을 낀 것도 아니데 말이죠. 지민이는 엄마의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합니다. 손톱에는 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습니다. 긴 머리카락은 TV에서 샴푸 선전을 하는 것처럼 바람에 날립니다.

“어? 엄마 손 이제는 의수(만들어 붙인 손) 아니네!”

지민이는 예쁜 엄마 손이 신기해서 자꾸 들여다봅니다. 엄마는 그냥 웃기만 하십니다.

“여러분! 어서 오세요.”

놀이기구가 말을 합니다. 지민이는 엄마 손을 잡고 차례를 기다립니다. 앞에 한별이가 엄마와 서 있습니다. 한별이가 타려고 하자 놀이기구는 한별이를 밀어놓고 지민이와 엄마를 태웁니다. 놀이기구는 구름 속을 들어가기도 하고 달나라 가까이도 다가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달 속에서 커다란 손이 나오더니 지민이를 잡아당깁니다. 엄마는 그 손을 떼어내자 엄마가 대신 붙잡힙니다. 지민이는 있는 힘은 다해 엄마를 당깁니다. 그러자 엄마의 팔이 쑥 빠지면서 두 사람은 놀이기구에서 떨어집니다.

“지민이가 이제 정신이 드나 봐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 가운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민이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봅니다. 엄마의 얼굴이 보입니다. 다시 지민이는 엄마의 팔을 봅니다. 방금 팔이 빠진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비어있는 남방의 오른쪽 팔이 움직일 때마다 힘없이 흔들립니다. 너무 다급해서 아마도 의수조차 끼울 시간이 없으셨나봅니다.

“엄마! 놀이기구 타고 달나라 갔었어.”

“그래? 그럼 토끼가 떡방아 찧는 것도 보았겠네?”

“아니. 커다란 손이 엄마를 잡아당겼어. 나하고 양쪽에서 잡아당기다가 그만……”

지민이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건 아마 손이 아니고 떡방아 기계일거야.”

이모가 옆에서 거듭니다.

“얘, 그런 게 어딨니? 그림에서 보니까 옥토끼가 절구에 떡방아 찧더라.”

“언니! 그건 언니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거기라구 언제까지 절구통에 떡을 만들겠수? 떡방아 기계 들여 놨겠지.”

엄마와 이모는 속상한 지민이의 마음을 모르는지 농담만 합니다.

“지민아! 떡방아 얘기 더 해줄까?”

엄마가 지민이의 이마에 얹었던 물수건과 소변 통을 들고 나가자 이모는 다가앉으며 말합니다. 지민이는 다시 졸음이 오고 피곤했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달나라 어느 마을에 떡 방앗간을 하는 옥토끼 부부가 살았대요.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아주 귀엽고 영리한 사내아이를 낳았대요. 부부는 너무 좋아서 일하는 것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대요.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일하는 곳에 아기 토끼가 아장아장 걸어왔대요.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일하는 것이 신기했는지 기계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막 돌아가는 기계를 만지려는데 엄마가 그때서야 아기를 보았대요. 엄마는 아기의 손을 기계에서 떼어 내려는 순간 그만 돌아가던 기계에 팔이 끼고 말았대요. 엄마는 팔이 빠져서 피가 흐르는데도 아기 걱정만 했대요.>

이모는 토닥토닥 두드리며 자장가를 부르듯 얘기했어요. 지민이가 잠든 줄 알고 이불을 잘 덮어주며 이야기를 끝냈지만 지민이는 다 듣고 있었지요. 지민이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에 가득 들어있던 눈물이 그만 흘러넘치고 말았어요.

“야! 너 지금 지민이한테 뭐라고 한 거야?”

엄마는 이모에게 따지듯 물었어요.

“별 얘기 안 했어. 그냥 달나라 아기토끼를 엄마가 구하려다가 팔 다친 이야기……”

“너 미쳤니? 그걸 얘기하면 어떻게 해!”

엄마는 조금 언성을 높였지요.

“언니! 지민이 이제 겨우 1학년이야. 그냥 옛날 얘기 정도로 들었을 거야. 그리고 얘기하는 도중에 잠들었고……”

“우리 지민이가 얼마나 영리한지 너 모르니? 암튼 앞으로 말조심 해!”

엄마는 한 번 더 다짐을 주었어요.

그때 학예회를 마치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지민이 어머니! 얼마나 놀라셨어요. 수술이 잘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며 또 말씀하십니다.

“지민아 많이 아프니?”

친구들은 지민이 침대 주위를 빙 둘러쌉니다. 엄마는 얼른 빈 남방의 팔을 이모 등 뒤로 숨기며 비켜섭니다.

“선생님, 괜찮아요. 오늘 학예회 꼭 하고 싶었는데……”

지민이는 정말인 것처럼 말합니다.

“나도 너랑 같이 발표회 하고 싶었어.”

은송이가 지민이의 귀에 대고 살짝 속삭입니다. 지민이는 아프지 않을 때보다 더 씩씩하게 말합니다.

“얘들아! 우리 엄마야. 이쪽은 우리 이모…… 한별아! 우리 엄마 알지?”

친구들은 지민이가 정말 씩씩하고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지민이는 오늘 퇴원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엽니다. 지민이가 병원에 가기 전에 봉오리였던 국화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국화야! 너 우리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지? 시계야! 우리 엄마가 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알았니? 책상아! 의자야!…… 복실아!……”

지민이는 보이는 것마다 바라보며 묻습니다. 복실이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낑낑거리며 폴짝폴짝 뛰어오릅니다. 지민이는 책갈피에 넣어 둔 초대장을 꺼내 바라보다가 반으로 찢어버립니다. 이제는 몰래 확인도장 찍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지민이 엄마는 아무리 바빠도 지민이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라도 달려가실 테니까요.

                                                  

                                                     -끝-

'나의 글 >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금만 기억할거야~  (0) 2009.12.11
이제 울지않을 자신있어~  (0) 2007.09.01
아연이의 소원  (0) 2007.09.01
우리는 닮은 친구였어.  (0) 2007.01.17
울보색시  (0) 2007.01.17

관련글 더보기